『선교적 공동체 세우기』는 새로운 지식을 전하는 공부 모임에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가 매일 발 딛고 서 있는 가정, 일터, 학교, 이웃과의 관계가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신 ‘선교지’임을 깨달아 가는 여정입니다.
인도자로서 부담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선교적 삶을 완벽하게 살고 있지 못한데, 누구를 인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 주십시오. 이 과정에서 인도자는 ‘먼저 고민하고 함께 걷는 동료’입니다.
교재의 ‘성경 속으로’와 ‘핵심 정리’는 본문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돕고, 각 과를 마무리하는 ‘성찰하기’의 질문에는 정해진 답이 없습니다. 그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 보기를 권합니다. 인도자님의 역할은 참여자들이 안전하게 자신의 삶을 나누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8주간의 여정을 통해 인도자님과 공동체가 ‘보냄 받은 자’로서 기쁨과 자유를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교재의 특성
『선교적 공동체 세우기』는 선교가 특별한 사역에 그치지 않고 모든 성도가 가정과 일터에서 살아 내야 할 삶의 방식이자 정체성임을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인도자가 지식을 주입하기보다, 참여자가 성경 말씀을 통해 스스로 ‘보냄 받은 자’임을 깨닫고 각자의 일상에서 구체적인 선교적 삶을 실천하도록 돕는 귀납적 훈련 교재입니다.
16과, 8주 과정
16개 과를 한 주에 두 과씩, 최소 8주 동안 나누는 것을 기준으로 합니다. 참여자가 조금 빠듯하다고 느낄 만한 분량입니다. 모임 상황에 따라 더 길게 진행하셔도 좋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에 더 머무셔도 괜찮습니다.
성경 중심의 귀납적 학습
인도자가 이론을 주입하지 않고, 학습자가 직접 성경 본문을 읽고 관찰하며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연속성과 누적 학습
각 과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이전 내용을 복습하며 개념을 쌓아 가도록 이어집니다. 특히 1과의 핵심 구절(요 20:21)이 교재 전체를 관통합니다.
정체성에서 실천으로
선교적 활동(Doing)을 먼저 다루지 않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회의 정체성(Being)을 먼저 세운 뒤 삶의 방식(윤리)으로 나아갑니다.
일상성 강조
거창한 프로젝트보다 가정, 직장, 이웃 관계 같은 일상의 삶을 선교의 현장으로 다시 정의합니다.
1권은 보냄 받은 공동체와 선교의 주인이신 하나님(1-4과), 자유와 가치, 새 창조와 화해로 이어지는 복음(5-8과), 선행과 소망으로 드러나는 일상의 선교(9-12과),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신 방식을 따라 주인과 손님으로 살아가는 태도(13-16과)를 차례로 다룹니다. 더 많은 주제는 2권 『선교적 공동체 살아내기』에서 이어집니다.
이 교재는 참여자가 미리 공부해 오고 모임에서는 나눔에 집중하는 ‘거꾸로 학습’(Flipped Learning) 방식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도자에게는 기존 성경 공부와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강의하기보다 확인하세요(check)
교재에 본문 해설이 이미 실려 있습니다. 인도자의 역할은 참여자가 핵심 내용을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단답형 퀴즈보다는 그 개념이 왜 중요한지 설명해 보게 하거나, 본문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했는지 묻는 확인 질문을 활용해 보세요.
정답을 말하기보다 틈을 메워 주세요(fill)
참여자들의 나눔을 듣다 보면 성경 본문을 오해하거나 교재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하는 부분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때 개입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설명하거나 바른 방향으로 안내해 주면 됩니다.
‘지식 습득’은 집에서, ‘삶의 적용’은 모임에서(share)
모임 시간의 70% 이상은 각자의 깨달음과 적용을 나누는 데 쓰는 것이 좋습니다. 첫 모임에서 “미리 읽고 문제에 답하여 오는 것”이 이 모임의 필수 조건임을 분명히 알려 주세요. 예습을 못 해 온 참여자가 너무 많다면, 강의로 대신하기보다 그 자리에서라도 교재를 읽고 풀 시간을 갖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촉진자(Facilitator)의 태도
참여자가 답을 말할 때 “정답입니다”, “아닙니다”로 판정하기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네요”, “신선한 관점이네요”처럼 반응하여 대화를 풍성하게 만들어 주세요. 엉뚱한 대답이나 솔직한 실패의 경험도 비난받지 않고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있어야 진짜 ‘선교적 삶’의 고민이 나옵니다.
준비 체크리스트
이 모임은 인도자의 강의가 아닌 참여자의 예습과 나눔으로 이루어집니다. 모임 전에 다음 항목을 점검해 보세요.
과별 가이드
과별 가이드는 인도자가 참여자의 학습을 점검하고 삶으로 연결하는 촉진자 역할을 하도록 짧게 정리한 안내입니다. 교재 본문 해설만으로 내용 파악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지점은 아래 참고도서로 보충하실 수 있습니다.
확인 포인트 Check
참여자가 예습을 통해 핵심 주제와 성경 본문의 의도를 바르게 파악했는지 점검하는 질문
보충 내용 Fill
참여자가 혼자 공부할 때 놓치기 쉬운 개념을 바로잡아 주는 핵심 정리
나눔 질문 Share
배운 내용을 참여자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가정, 일터, 관계)으로 가져와 실제적인 변화와 적용을 이끄는 심화 질문
과 제목, 성경 본문, 질문과 설명에 들어 있는 낱말로 16과를 거릅니다. 여러 낱말을 띄어 쓰면 모두 들어 있는 과만 보입니다.
맞는 과가 없습니다
검색어 ‘’에 맞는 과를 찾지 못했습니다. 다른 낱말로 찾거나 검색어를 지우고 16과 전체를 보세요.
‘선교적’이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로 ‘보냄’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선교적 공동체’란 어디로, 누구에게, 무엇을 위해 보냄 받은 공동체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기 전에 가장 먼저 ‘평강’을 주시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보충 내용 Fill
‘선교’를 해외로 떠나는 특별한 활동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단어의 뿌리는 ‘보냄’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보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세상으로 보냄 받은 존재라는 정체성이 핵심입니다.
요한복음 20장 19-23절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세상으로, 더 정확히는 ‘누구에게나’ 보냄 받습니다. 그들은 죄 가운데 고통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입니다(참고. 요 3:16). 제자들의 사명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어 죄 용서를 받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누리도록 돕는 일입니다(참고. 요 1:12; 20:31). 예수님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시고 이어서 죄 사함을 말씀하신 흐름을 함께 짚어 주세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기 전에 먼저 ‘평강’을 주셨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세상에 나갈 힘은 비장한 결심에서 나오지 않고,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성령에서 나옵니다.
나눔 질문 Share
“나는 세상으로 보냄 받은 자”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내 삶의 자리는 어디이며, 그곳에서 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보냄 받은 자리에서 두려움이 기쁨과 사명으로 바뀐 경험이 있습니까?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의 길을 막으신 분은 누구였으며,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나기까지 그의 편견을 깨뜨리신 분은 누구입니까?
교재가 말하는 ‘하나님의 선교의 첫 대상은 교회다’라는 표현은 무슨 뜻입니까? 사도행전 11장 1-18절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새롭게 깨닫고 인정하게 된 사실과 연결해 설명해 보세요.
보충 내용 Fill
우리는 우리가 선교의 주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을 막으시고 우리의 편견을 깨뜨리시는 과정을 통해 일하십니다.
고넬료 사건의 핵심은 그가 이방인이었다는 사실보다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새 계시(보자기 환상), 그 계시에 대한 순종(고넬료를 만나 복음을 전함), 경계를 넘은 순종에 따른 새 경험(할례 없는 이방인에게 예수 복음만으로 성령이 임함), 교회의 새 깨달음(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심)이 차례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상으로 보내시는 과정에서 교회가 가진 인식의 경계를 먼저 새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일은 세상의 유익을 위한 일이면서 교회의 유익을 위한 일입니다.
나눔 질문 Share
내 생각에는 옳다고 여겨 추진했으나 막혔던 일, 혹은 하기 싫었으나 억지로 순종했던 길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경험이 있습니까?
복음을 전하거나 누군가를 섬기려다가 내 안의 편견을 발견하거나, 도리어 내가 더 큰 은혜를 입고 변화된 경험이 있다면 나눠 봅시다.
갈라디아서 2장 15-16절에서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길이 어디에 있다고 말합니까? 게바가 안디옥에서 이방인과의 식사 자리를 피한 행동은 이방인 성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습니까?
바울이 디도에게 할례를 받지 않게 한 것은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습니까?
교재에서 말하는 ‘복음 안에서의 자유’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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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선언합니다(갈 2:16). 게바는 이 사실을 알고 믿으면서도 다른 유대-그리스도인들의 시선이 두려워 이방인과의 식사 자리를 피했고, 그 행동은 예수를 믿는 믿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이방인 성도들에게 주었습니다. 반대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디도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거짓 형제들에게 맞서 복음의 진리를 지켰습니다(2:3-5). 교재의 성찰하기는 오늘 복음의 자유를 빼앗는 것을 세 가지 예로 살피게 합니다. 교회 안의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게바),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강요받는 일(디도), 성경에 쓰여 있다는 이유로 복음만큼 필수라고 요구되는 일(유대-그리스도인)입니다.
복음에 무언가(할례, 율법, 특정 문화)를 더해야 구원받는다는 생각은 복음의 본질을 무너뜨립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지키기 위해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사람들의 평가에서 해방되어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유입니다.
나눔 질문 Share
신앙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해”라는 압박감에 시달리거나, 그 기준으로 남을 판단했던 적이 있습니까?
세상의 기준이나 사람들의 평판에 얽매이지 않고, 복음 때문에 당당하게 “아니오”라고 말하거나 자유함을 누려 본 경험이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2장 19-20상절에서 바울은 어떻게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받으신 율법의 저주(갈 3:13)와 연결해 설명해 보세요.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바울은 2장의 ‘율법’ 대신 무엇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합니까? 유대인의 자랑이던 할례가 아무 의미가 없게 되었다는 고백(15절)은 무엇을 뜻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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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고(갈 3:13), 믿음으로 그분과 하나 된 우리도 그분과 함께 죽어 더 이상 율법의 지배 아래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 죽음이 율법과의 관계를 끊었으므로, 다시 율법의 행위로 돌아가는 것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워 스스로를 범법자로 만드는 일입니다(갈 2:18). 안디옥에서 게바가 한 일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세상’은 세상을 등진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를 믿기 전 나를 형성하고 지배하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리킵니다. 바울 같은 유대인에게는 율법이 그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으므로, 할례처럼 이전에 자랑하던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눔 질문 Share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내 인생의 자랑거리나 든든한 배경이었지만, 지금은 무가치하게 여기거나 내려놓게 된 것이 있습니까?
지금 나를 형성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나 세계관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그것에 대하여 죽었다고 고백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 고백은 돈 사용, 시간 관리, 진로 선택에서 어떻게 드러날 수 있을까요?
교재는 ‘새 창조’(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를 설명하면서, 이것이 막연한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으로 나타난다고 했습니까?
우리가 율법이나 세상의 기준을 떠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따를 수 있는 근거는 예수님의 어떤 행동 때문입니까?
고린도후서 5장 13-19절에서 바울이 오해를 받으면서도 사역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14절)? 새로 지음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직분과 말씀은 무엇입니까(18-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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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창조’는 마음이 편해지는 심리적 변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존재 자체가 바뀌어 삶의 동력이 ‘두려움이나 의무’에서 ‘사랑’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믿음은 관념에 머물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자신을 버리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나도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구체적인 ‘사랑의 수고’가 곧 선교적 삶입니다.
새 창조는 개인의 변화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고(고후 5:14), 새로 지음 받은 사람은 이제부터 아무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않습니다(16절).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으로 이루신 화해를 이미 경험한 사람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맡기십니다(18-19절).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고 대표하는 사람, 곧 대사로서 화해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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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믿은 뒤 겪은 변화 가운데 “아, 내가 정말 예전과 다른 존재(새로운 피조물)가 되었구나”라고 느낀 가장 뚜렷한 변화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고 고백합니다(갈 2:20). 나의 믿음이 머리에만 머물지 않고 누군가를 향한 ‘사랑의 수고’로 나타난 구체적인 경험이 있다면 나눠 봅시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화목’(화해)은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또 어떤 관계의 회복을 포함합니까?
골로새서 3장 8-15절에서 새 사람은 무엇을 벗고 무엇을 입습니까? 새 사람 안에서 헬라인과 유대인, 할례파와 무할례파, 야만인과 스구디아인, 종과 자유인의 구분은 어떻게 됩니까(11절)? 이런 삶은 무엇이 마음을 주장할 때 가능합니까(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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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화해시키고(골 1:21-22), 그 화해는 사람 사이의 화평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옛사람의 행위는 분함, 노여움, 악의, 비방과 사람 사이의 분열로 나타나지만, 새 사람은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서로 용납하고 용서합니다(골 3:8-13). 공동체 안에 화해와 화평이 없이 하나님과 세상의 화해라는 더 큰 메시지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누군가에게 용서받는 경험까지 복음의 효력을 드러내는 데 쓰십니다.
1단원에서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선교의 첫 대상임을 살폈다면, 2단원은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선교가 효력 있게 일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표지라는 고백으로 마무리됩니다. 공동체의 삶은 복음의 해설서입니다.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는 삶은 원만한 교회 생활을 위한 규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리라는 증거이며, 선교적 공동체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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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하나님과의 화해뿐 아니라 사람 사이의 화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삶에서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까?
지금 내 주변에 관계가 깨졌거나 서먹한 사람이 있습니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사람으로서,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라는 권면(골 3:13)을 따라 내가 먼저 다가가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면서, 사람들이 제자들의 ‘무엇’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베드로전서에서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신 목적은 하나님의 무엇을 선포하게 하려 함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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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행실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백성이 가진 빛이 세상에 드러나는 방식이며, 선교의 중요한 도구입니다(마 5:16). 하나님을 선포하는 일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세상과 구별되는 선한 행실을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세상은 우리의 말과 함께 행실을 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 가며, 마침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벧전 2:12).
우리의 선행은 도덕적 우월감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어둠 속에 있던 우리를 빛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덕(성품)을 세상에 비추는 일입니다. 그 빛은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고 빛이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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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말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과 “삶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는 생각 사이에서 나는 균형을 잡고 있습니까? 나의 행실이 복음을 가렸던 적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거창한 봉사가 아니더라도, 내가 속한 직장이나 동네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지만 구별된 ‘선행’은 무엇이 있을까요?
베드로전서 3장 1-6절과 2장 13-20절에서 아내, 자유인, 집에서 일하는 종(사환)에게 주는 권면의 공통된 근본 동기는 무엇입니까? 교재는 이 권면을 오늘의 직장 상사와 직원 관계에 그대로 옮길 수 있다고 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날의 상황은 그때와 다르지만, 교재는 우리가 처한 삶의 자리(가정, 일터)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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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환’은 고대 로마 사회에서 집에서 일하던 종으로, 주인의 처분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대항할 방법이 거의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런 종들에게 굴종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순종하라고 권합니다. 교재는 이 권면을 오늘의 직장 관계에 그대로 옮겨 폭언과 부당한 대우를 참는 것을 선행으로 여길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왕이나 총독, 집에서 부리는 노예가 없는 오늘의 사회에서는 당시 권면에서 원리를 찾고, 각자의 상황과 맥락에서 그 원리를 어떻게 표현할지 분별해야 합니다. 그 원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생각하는 것(벧전 2:17, 19; 3:5), 그리고 지금 주어진 삶의 자리를 하나님의 선교 현장으로 받아들여 그곳에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선교지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가정과 일터, 학교와 지역사회가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선교 현장입니다. 베드로는 당시 사람들이 업신여기던 낮은 지위의 사람까지 포함해 ‘뭇 사람을 공경하라’(벧전 2:17)고 권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람을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선교적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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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시대와 오늘의 문화 차이를 생각할 때, 지금 내가 속한 가정, 일터, 학교, 지역사회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선을 행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함께 지내기 어려운 사람에게도 존중과 선을 실천하기 위해 이번 주에 해 볼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나의 일터나 가정을 생계와 생활의 터전을 넘어 ‘선교지’로 인식한다면, 내일 하루의 태도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게 하려면, 그 전제로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합니까?
고난 중에도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선을 행할 수 있는 근거인 ‘산 소망’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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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우리가 그들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고난 중에도 평안한 모습이 그들에게 거룩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베드로는 선행이 말로 하는 증언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선을 행하다 고난을 받을 때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며,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대답할 준비를 하라고 권합니다(벧전 3:14-15). 이 준비는 상대를 논리로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온유와 두려움과 선한 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15-16절).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복을 비는 삶은 주의 눈이 의인을 향하신다는 믿음에서 나옵니다(10-12절, 시 34편 인용).
우리의 소망은 이 땅에서의 성공에 있지 않고,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의 유업’(새 창조)에 있습니다. 이 미래의 소망이 현재를 이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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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누군가에게서 “당신은 왜 그렇게 평안합니까?” 혹은 “왜 손해를 보면서도 그렇게 삽니까?”라는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세상의 소망(돈, 성공)이 흔들릴 때 나를 붙들어 주는 진짜 소망은 무엇입니까? 믿지 않는 친구에게 이 소망을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고린도전서 15장 50-58절에서 신자가 굳게 붙들어야 할 미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이 약속은 왜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에 힘쓰게 하는 동기가 됩니까(58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장차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것을 지금 우리 안에서 보증해 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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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먼 훗날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아는 믿음은 오늘 죽음 같은 고통을 견디게 하고, 세상의 위협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게 하는 능력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시므로 우리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을 보증하십니다(롬 8:11). 또한 양자의 영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로 세우십니다(15-17절). ‘보증’은 나중에 잔금을 치르겠다고 약속하며 먼저 주는 선금과 같습니다(고후 5:5; 엡 1:14). 교회는 성령 안에서 장래의 나라를 이미 맛보며, 세상에 홀로 나가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이 소망을 증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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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과 하나님 나라 상속이라는 미래의 소망이 오늘 나의 선택과 태도를 어떻게 지탱해 주고 있습니까?
현실의 문제가 너무 커서 소망이 흐릿해질 때,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어떻게 다시 믿음을 확신시켜 주셨는지 경험을 나눠 봅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죄인들을 대하신 방식은 무엇이었으며, 그 방식은 선교적 삶에 어떤 태도를 요구합니까?
디모데전서 1장 15-16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긍휼을 입은 까닭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교재는 교회가 무엇의 ‘본보기’가 되어 세상으로 보냄 받는다고 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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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교는 ‘효율성’이 아니라 ‘사랑’으로 움직입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인을 오래 참으시고 고통을 감수하십니다. 우리도 이 마음 없이는 이웃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신 목적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려는 것입니다(요 3:17). 교회도 세상의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보냄 받습니다. 지금 선교가 가능한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죄를 오래 참으시며 심판을 미루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래 참음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십자가 고난의 자리로 보내셨듯이, 교회도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도록 보냄 받습니다.
우리는 의인으로서 죄인을 구하러 가지 않습니다. 먼저 긍휼을 입은 죄인으로서 세상에 나갑니다. 바울처럼 교회도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으로 구원받은 죄인이며, 하나님의 긍휼이 얼마나 큰지 세상에 보여 주는 본보기로 보냄 받습니다. 이 겸손이 선교적 태도의 기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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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깊이 깨닫고 감사했던 순간이 있습니까?
누군가를 구원하거나 섬기기 위해 내가 감수해야 했던 ‘기다림’이나 ‘마음고생’이 있었습니까? 그 시간을 통해 배운 것은 무엇입니까?
주인이신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행동은 보냄 받은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자리에 서야 하는지 무엇이라고 말해 줍니까?
빌립보서 2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워 어떤 형체를 가지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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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지배하려 하지만, 선교적 삶은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 섬기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자기 비움’은 선교의 핵심 원리입니다.
우리는 ‘정복자’로 보냄 받지 않았고 ‘종’으로 보냄 받았습니다. 힘으로 굴복시키지 않고 사랑으로 섬겨 감동을 주는 것이 예수님의 방식입니다.
빌립보서 2장은 낮아지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종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게 하여 성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9-11절). 십자가는 마땅한 권리와 대우를 내려놓은 자리이면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영광을 돌리는 자리입니다. 세족 명령은 먼저 제자들 서로를 향한 것이지만, 서로의 종이 되는 공동체가 세상에 우리를 보내신 그리스도를 드러냅니다(요 13: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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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나 교회, 직장에서 내가 ‘대접받으려 했던’ 주인 행세를 한 적은 없습니까? 종의 모습으로 다가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일까요?
서로 발을 씻어 주는(서로 종 노릇 하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 내가 먼저 낮아져서 섬겨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멜리데 섬에서 바울은 원주민과 보블리오의 환대를 어떻게 받았으며, 손님으로 머물면서 그 섬 사람들에게 무엇을 행했습니까? 고린도전서 10장 23절-11장 1절에서 바울은 불신자의 집에 초대받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어떻게 처신하라고 권합니까?
바울이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같이,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같이 처신했던 유일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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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데에서 바울은 주는 것을 먹고 재워 주는 대로 자며 원주민과 보블리오의 환대를 누렸습니다. 헬라인들이 업신여기던 원주민을 미개하게 여기거나 우상숭배자라고 비난하며 환대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손님으로 머무는 동안 보블리오의 부친과 섬의 많은 병자를 고쳐 하나님의 생명을 전했습니다(행 28:7-9). 때로는 주도권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환대를 기꺼이 받는 ‘손님’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비굴함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삶을 존중하며 다가가는 성숙한 태도입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나의 문화적 취향이나 고집을 꺾고 ‘유연하게’ 맞춰 주는 것이 선교적입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를 전하기 위해 그릇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3절-11장 1절은 불신자의 집에 초대받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주는 권면입니다. 바울은 차려 준 음식을 두고 제물인지 묻지 말고 먹으라고 합니다(25-27절).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26절). 식탁에서 제물이 아니냐고 따지며 먹기를 꺼리면 대접한 사람의 명예가 크게 손상될 수 있습니다. 다만 누군가 이것이 제물이라고 알려 주면, 알려 준 사람과 그의 양심을 위해 먹지 말라고 합니다(28-29절). 손님의 자유는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과 양심을 살피는 자유입니다. 바울의 기준은 자기 평판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복음이었고, 아무에게도 거치는 자가 되지 않으며 자기 유익보다 많은 사람의 유익과 구원을 구했습니다(32-33절). 이것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입니다(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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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환대를 받는 것이 어색하거나 힘들지는 않습니까? ‘손님’이 되어 상대방을 높여 줄 때 관계가 어떻게 열리는지 경험해 보셨습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혹은 이웃과 어울리기 위해 내가 고수하던 방식이나 문화를 내려놓고 상대방에게 맞춰 준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나눠 봅시다.
선교적 성경 해석학을 정의하고 성경에 적용하는 예를 보여 주며, 설교와 신학 공부가 하나님의 선교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 다룹니다.
맺는 말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듯, 우리가 함께 나눈 말씀과 고민은 이미 공동체 안에 스며들어 자라날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빛이 되기를, 그리고 인도자님의 삶이 그 거룩한 통로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21
교재 구입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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